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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상품은 손대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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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치 아픈 금융상품들
당신은 금융상품을 얼마나 아는가? 별로 달갑지 않은 질문이다. 금융상품이란 것이 만만치가 않다. 상품의 내용은 물론 상품 이름조차 생소하다. 생소한 정도가 아니라 난해하고 해괴망측하기까지 하다. 전문가라는 사람이 설명해줘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고, 겨우 이해해도 돌아서면 깜깜해진다. 내가 부족한 탓일까? 그래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것일까?
이렇게 생각한다면 당신은 소위 전문가의 “작전”에 말려든 셈이다. 순진한 고객의 기를 꺾어놓아, 자신에게 의지하게 하려는 작전 말이다. 이런 작전에 말려들면 당신은 코가 꿰이게 되고, 자칫 당신의 미래가 아니라 전문가의 미래를 살찌우는 제물이 될 수도 있다. 섬뜩한 느낌이 들지 않는가?
복잡한 상품 알 필요 없다!
그렇다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지 않는다면, 도무지 뭔 말인지도 모르는 어려운 상품에 내 힘으로 어떻게 투자한단 말인가?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공부해서 제대로 이해한 다음 투자하는 것이다. 전설적인 투자의 거장 피터 린치는 “공부하지 않고 투자하는 것은, 패를 보지 않고 포커를 하는 것과 같다.”라고 말했다. 1) 패를 보지 않고 포커를 한다면, 운 좋게 몇 판은 딸지 몰라고 결국은 빈털터리가 될 수밖에 없다.
나머지 하나는 더 쉬운 방법이다. 모르는 상품에는 투자하지 않으면 된다. 이게 무슨 소린가? 하루라도 빨리 좋은 상품에 투자해서 돈을 불려야 하는데, 모른다고 좋은 상품을 놓치란 말인가? 아마도 금융회사 직원은, 이렇게 좋은 상품이 날이면 날마다 나오는 것이 아니므로 서둘러 투자하라고 권유할지도 모른다. 이 대목에서 조심해야 한다. 필자가 거듭 강조하는 두 가지 기준, (1) 실력이 입증된 사람으로서, (2) 사심 없이 공정하게 조언할 수 있는 사람인지 따져보아야 한다. 유감스럽게도 금융회사 직원들의 실력은 그리 믿을만한 수준이 되지 못한다. 대부분 직원이 회사에서 평가받는 기준은 투자 실력이 아니라 금융상품 판매 실력이다. 따라서 고객을 성심성의껏 관리하여 상품을 많이 파는 일에 주력해야만 회사에서 버틸 수 있다. 게다가 요즘 나오는 첨단 금융상품에는 흔히 선물, 옵션 등이 포함되어 있어서, 어지간한 전문가 아니면 이해하기도 어렵다. 직원들은 고객을 관리하고 서류를 챙기는 작업만으로도 힘이 부칠 정도다.
부딪치는 이해관계
가장 심각한 문제는 고객과 금융회사 직원 사이에 이해관계가 충돌한다는 사실이다. 즉, 고객과 직원은 대개 이익을 놓고 서로 다투는 관계가 된다. 주식을 매매하는 고객과 증권회사 직원 사이에서 이런 모습이 매우 선명하게 드러난다. 고객이 주식을 자주 사고팔아 거래 비용이 증가할수록 직원은 돈을 많이 벌게 된다. 고객이 좋은 종목을 잡아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자주 매매를 하지 않는다면, 직원은 손가락만 빨아야 한다. 반면에 고객이 손해를 보더라도 자주 매매를 하면, 직원은 표정관리를 하면서 속으로 기뻐하게 된다. 그래서 유능한 직원으로 인정받아 돈 벌고 승진하려면 고객이 자주 매매하도록 유도할 수밖에 없다.
이런 관계는 오랜 역사와 함께 투명성을 자랑하는 미국이라고 다를 바가 없다. 그래서 윌리엄 번스타인은 “주식 중개인이 고객에게 해주는 서비스란, 은행강도가 은행에 해주는 서비스와 비슷하다.”라고 말했다. 2)
펀드도 마찬가지다. 대개 직원의 능력은 “수익성 높은” 상품의 판매 실적으로 결정된다. 문제는 고객의 수익성이 아니라 “회사의 수익성”이 높아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직원들은 각종 수수료를 많이 떼는 상품을 적극적으로 권유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금융회사 직원이 가장 먼저 권유하는 상품은 그 직원에게 가장 유리한 상품이고, 자연히 투자자에게는 가장 불리한 상품일 가능성이 크다.
금융회사 직원들의 (1) 실력과 (2) 공정성에 대해 워런 버핏은 특유의 재치를 발휘한다. “금융회사 직원들이 투자자들의 돈에 대해 지금까지 보여준 판단력과 절제력은, 알코올 중독자들이 술을 대하는 태도와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따라서 책임감 있는 바텐더가 손님의 귀갓길을 걱정하여, 매상이 줄더라도 한잔 더 달라는 요구를 거절하는 것처럼, 금융회사도 책임감을 느껴야 할 것입니다.” 3) 지금처럼 몇 푼 더 벌려고 고객을 위태롭게 해서는 안 된다는 버핏의 따끔한 충고다.
이제 다음 통계를 보면 쏟아지는 금융상품에 대해 흥미가 더 감소할 것이다.
무더기로 버려지는 상품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2011년 3월 초 기준 국내 설정 펀드 수는 9,227개이며 이 중 약 66%에 이르는 6,089개가 규모 100억 원이 안 되는 자투리펀드다. 자투리펀드는 운용하기 불편하면서 수입은 적으므로, 회사에 부담만 되는 천덕꾸러기 펀드가 된다. 결국, 우리나라는 펀드 3개 중 2개가 천덕꾸러기 펀드가 되어 버려진다는 말이다. 왜 이렇게 많이 버려질까? 너무 많이 만들기 때문이다. 미국 자산운용협회(ICI) 집계에 따르면, 2010년 3분기 기준 우리나라 펀드 수는 8,738개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다. 4) 우리나라 펀드산업의 낙후된 현실을 보여주는 부끄러운 숫자다. 따라서 우리가 펀드 상품 3개에 투자하면, 그중 2개는 버려질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다. 실상이 이러하므로, 우리는 새로 나오는 금융상품에 서둘러 투자하려고 안달할 필요가 전혀 없다.
인기 상품 ELS는 좋은 상품일까?
그래도 첨단 금융상품에 대해 미련이 남을 수 있으므로, 최근 몇 년 동안 인기를 누려온 주가연계증권(ELS)을 생각해보자. ELS는 2010년 발행금액이 24조 원이 넘을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ELS는 대개 어떤 종목의 주가가 일정 범위를 유지하면 높은 수익을 얻고, 그 범위를 벗어나면 손실을 보는 구조다. 예컨대 종목 A가 6개월 동안 10만 원 밑으로 내려가지 않으면 높은 수익을 얻고, 10만 원 밑으로 내려가면 손실을 보는 식이다. 주식에 어느 정도 감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식으로 생각할 만하다. “A 같은 우량 종목이 설마 6개월 안에 10만 원 밑으로야 내려가겠어? 요즘 시장 분위기로 볼 때 그럴 가능성은 희박해!”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긴 투자자 김씨는 과감하게 ELS에 돈을 넣는다. 김씨는 이 상품을 제대로 알고 투자한 것일까?
김씨는 자신이 돈 버는 조건만 알 뿐이지, 상대편이 어떤 식으로 돈 버는지 알지 못한다. 왜 이런 상품을 만들어서 제안하는지 그 이유를 이해하지 못한다. 포커나 고스톱에 비유하면 자기 패만 들여다볼 뿐, 상대편의 패를 전혀 짐작하지 못하는 셈이다. 반면에, 상대는 내 패를 모두 알고 있다. 더군다나 내가 만기까지 같은 패를 꼭 쥐고 있어야 한다는 사정까지 알고 있다. 상대편이 게임의 규칙을 약속대로 지켜주리라 철석같이 믿고 의지하는 수밖에 없다.
증권회사는 주로 중개해주면서 돈을 버는 회사다. 자신이 위험을 직접 떠안는 일은 본업이 아니다. 이는 김씨와 반대로 주가를 예상하는 사람들이 시장에 많이 있다는 뜻이다. 이런 사람들을 이용해서 증권회사는 자신의 보수까지 충분히 반영한 ELS 상품을 만들었다고 보아야 한다.
ELS 투자의 타당성 분석
(1) 김씨에게 주가를 내다보는 남다른 통찰력이 있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김씨는 ELS로 계속해서 돈을 벌 것이다. 그러나 그런 통찰력이 있다면 굳이 ELS를 선택할 필요가 없다. 선물이나 옵션을 이용하면 훨씬 빨리 큰돈을 벌 수 있다. 따라서 ELS는 김씨에게 좋은 투자 상품이 아니다.
(2) 이번에는 김씨가 평범한 투자자에 불과하다고 가정하자. 몇 번은 운 좋게 벌 수 있지만, 이런 거래를 계속 한다면 행운의 여신은 김씨를 외면할 것이다. 비유하자면, 김씨의 ELS 투자는 기댓값이 90% 대인 룰렛이나 슬롯머신에 계속 돈을 거는 것과 같다. 슬롯머신에 100원을 넣었을 때 기대할 수 있는 당첨금액이 100원이 아니라 90여 원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이는 증권회사가 상품을 판매하면서 챙기는 이익 때문이다. 김씨는 자신의 예측이 맞을 것으로 기대하지만, 이는 평범한 투자자인 김씨의 희망사항에 불과하다. 김씨는 단지 그럴 듯하게 포장된 조건에 혹해서, 자신이 남들보다 주가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고 착각을 일으킨 것이다. 이런 낙관적 기대는 김씨만의 문제가 아니라 거의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는 매우 보편적인 현상으로서, 행동재무학에서는 과신(過信)이라고 부른다.
더 위험한 변수는 룰렛이나 슬롯머신이 조작되는 경우다. 만기까지 똑같은 패를 그대로 들고 있어야 하는 김씨의 처지를 증권회사가 악용하는 사례다. 만일 증권회사 직원이 실적에 쫓기는 상황이라면 어떻게 될까? 어차피 실적 때문에 불이익을 당할 처지라면, 직원은 위험을 무릅쓰고 반칙을 저지를 수도 있다. 손쉬운 먹잇감이 코앞에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투자의 역사를 돌아보면 이런 반칙은 수없이 되풀이되었다. 그래서 워런 버핏이 따끔한 충고를 했던 것이다. 아무튼, 김씨가 평범한 투자자라고 가정해도 ELS는 좋은 상품이 아니다.
법정으로 간 ELS
ELS를 놓고 민사소송이 줄을 잇고 있다. 2010년 7월 1일 서울중앙지법 민사31부는 판결문에서 “조건 성취 시 매입자들에게 원금에 약정이자를 더한 중도 상환금을 지급할 의무를 부담하게 되므로, 판매사는 조건 성취로 불이익을 받을 당사자”라고 정의하고 “대우증권은 기초자산을 대량 매도해 거래가격 형성에 영향을 미쳤고 이는 투자자의 정당한 신뢰와 기대를 해친 행위”라고 지적했다.
이어 “매도 주문은 상환금을 마련하기 위한 정당한 헤지 거래였다.”라는 대우증권 측의 주장에 대해 “장중 분할 매매 등 시장의 충격을 완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채, ELS의 두 번째 평가일 종가가 결정되기 불과 10분 전에 한꺼번에 대량 매도 주문이 이뤄진 것은 고의 또는 과실로 평가할 수 있다.”라고 못박았다. 5)
여기서 “매도 주문은 상환금을 마련하기 위한 정당한 헤지 거래였다.”라는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ELS는 원래부터 증권회사와 투자자가 경쟁 관계인 상품이라는 뜻이 된다. 증권회사가 주식을 파는 행위는 정당한 거래이므로, 투자자가 손실을 보아도 어쩔 수 없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2011년 6월 28일 검찰은 주가를 조작해 ELS 투자자에게 손실을 끼친 혐의로 국내외 증권사 4곳의 트레이더들을 기소했다. 주식워런트증권(ELW) 부정거래의 책임을 물어 전·현직 증권사 사장 12명이 기소된 지 불과 닷새 만의 일이다. 6)
원칙 1: 모르는 상품은 손대지 마라